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 건축 (문단 편집) === 삼국 시대 건축 === [[파일:attachment/uploadfile/hwangryongsaji02.jpg|width=500px]] 삼국 시대의 건축 가운데 제일 유명한 [[황룡사]]. 그리고 그 복원모형. 아쉽게도,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삼국시대의 목조 건물은 하나도 없다. 말 그대로 남아있는 고대 목조건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같은 목조건축문화인 중국이나 일본의 상황도 거의 비슷하다. 왜냐하면 돌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 썩고 또 불에 약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세부적인 면은 쉽게 알 수가 없으며, 남아있는 터의 기단과 주춧돌로 건물의 배치와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삼국 시대 건물지 등을 발굴하여 상당한 양의 건축 부재를 발굴하기도 한다. 무덤이나 조각, 금속으로 만든 모형 등의 유물로 간접적이나마 그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일본]]에는 [[호류지]], [[시텐노지]] 등 직ㆍ간접적으로 백제 등의 영향을 받았다는 고대 건축물이 존재한다. 중국 역시 [[당나라]] 시대 건축이 몇 개 보존되어 연구에 도움을 준다. 이렇듯 장기간 연구 자료가 축적되어 삼국 시대 건축에 대한 고증 역량도 강해지고 있다. 입식과 좌식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삼국시대에서 건축으로 가장 덜 유명한 것은 자료가 적은 [[가야]]는 논외로 치더라도 [[백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안학궁]]이나 [[황룡사]] 등 규모가 큰 고구려나 신라의 건축물과 비교했을 때 [[미륵사]] 정도를 제외하면[* 면적에서는 안학궁보다는 작고 개별 건물의 크기는 황룡사보다 작다.] 상대적으로 크기로 유명한 건축물이 부족해서이며, 사실 백제가 삼국시대에 가장 수준 높은 목건축술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황룡사]]의 9층 목탑에도 추측이지만 백제의 기술자가 건축했을 가능성이 있다. 자세한 건 [[아비지]] 문서 참조. 일본의 고건축과 관련된 기록에도 거의 다 백제의 장인이 등장한다. 출토되는 유물이나 터로 봤을 때는 근대를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가장 건축물이 거대한 시기이기도 하다. 터도 크지만, 발굴되는 기와나 치미의 크기 등이 장난이 아니어서 기와의 무게가 조선시대 기와의 5배 정도 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건축물의 크기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예가 된다. 유명한 [[황룡사]] 9층 목탑만 하더라도 당대 지어진 세계 건축물 중에서도 높이에 있어서 손에 꼽을 정도다.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치미]]는 높이가 무려 180cm가 넘으며, 만덕사지 치미도 이에 맞먹는 규모다. 지붕 장식의 규모가 이 정도니 건물의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지 가늠할 수 있다. 삼국을 대표하는 사찰로는 [[고구려]]의 [[정릉사]], 백제의 [[미륵사]], [[신라]]의 [[황룡사]]가 있다. 궁궐로는 한국 역사상 가장 크고 아름다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구려의 [[안학궁]], 신라의 [[경주 월성]] 등이 있다. 고구려의 경우는 [[고구려/건축]]도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